슬픈 감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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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감비아

죽은 자는 투표하지 않는다, 『빅 이슈 코리아』, 2017, 148, pp. 56-59.

빅이슈 코리아 작업이 아니었다면 감비아가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도 모르고 평생 살았을지 모른다. 사실 감비아와 잠비아가 다른 나라인지도 잘 몰랐다.

감비아는 아프리카 대륙의 북서부 대서양 연안 세네갈 사이에 끼어있는 아주 작은 나라다. 이 나라는 지난 23년 간 인권 침해, 표현과 집회의 자유 탄압을 공공연히 자행하는 야히야 자메 대통령의 독재 하에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 2016년 12월 치른 대통령 선거에서 야당 연합이 내세운 아다마 배로가 당선된다.

기사 번역 의뢰를 받은 것도 그즈음이다. 2016년 12월 마지막 주. 우리나라에서도 국회가 탄핵소추 의결서를 헌법재판소에 접수하고 주말마다 광화문에서 열리던 촛불집회의 주최측 누적 참여인원이 1000만명을 넘어서던 때.

그러나 EU, 아프리카인권위원회, 서아프리카 경제공동체 등 다양한 국제기구의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국제형사재판소 회원국에서 탈퇴하고, EU 부대사를 쫓아내는 등 불통 일변도로 온 독재자답게 자메 대통령은 대선 결과에 불복한다. 빅 이슈 기사는 여기까지 소식을 전했다.

그 후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궁금해져서 최근에 다시 소식을 뒤적여보았다.

자메는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대통령직을 사수하려 했으나 공식 대통령 임기가 끝나는 2017년 1월 18일로부터 4일째 되던 21일, 서아프리카 경제공동체가 무력 개입을 하겠다고 나선 후에야 그는 적도기니로 망명한다. 자메 정권 하에서 반인도 범죄를 저지른 후 망명을 위해 스위스에 머물던 전 내무장관 오스만 송코는 국제인권단체의 고발로 스위스 연방검찰의 수사를 받게 되고 4월 6일 감비아는 23년 만에 다수의 정당이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총선도 치른다.

희망차게 이야기가 여기서 끝나면 좋겠다.

그런데 자메가 망명한 적도기니에는 그와 오랜 시간 친분을 유지해 온 또 다른 독재자 오비앙 응게아가 있었다. 그 덕에 자메는 여전히 오비앙의 별장에서 조용히 편안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고 하며 5월 22일 있던 감비아 정부의 공식 발표에 따르면 자메가 국고에서 횡령한 돈이 최소 5,000만 달러(약 560억 원)라고 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감비아를 비롯해 아프리카와 중동의 내전 지역에서 홀로 자신의 삶을 지켜야 하는 아동 난민의 수는 5년 새 5배로 증가해 약 17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유니세프는 목숨을 걸고 탈출을 시도하는 이 아이들 절반 이상이 인신매매범에게 인권을 유린당한다는 통계를 발표하기도 했다.

너무 슬픈 이야기다.

빅 이슈에서 받는 기사는 때론 이처럼 마음 아픈 소식일 때도, 때론 희망찬 소식일 때도 있다.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늘 이렇게 세상 어디엔가 있는 약한 소수의 소식을 전한다는 거다. 빅 이슈 작업이 아니었으면 접하지 못했을 이런 소식을 알게 된다는 점만으로도 빅 이슈가 참 고맙다.

기사 원문에는 세계시민단체연합(CIVICUS)이 전 세계 각국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개진할 수 있는 수준을 모니터링하는 인터랙티브 맵을 공개하고 있다는 사실을 소개한다. 바람이 있다면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를 많이 접했으면, 많이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 나 하나 이런 걸 알아서 뭐 하나 싶다고 생각하지 말고 한 명이라도 더 알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