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붙 개발자의 벼락 성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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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붙 개발자의 벼락 성공기

나는 종종 ‘내 인생을 영화로 만들면 참 지루할 것’이라고 얘기하곤 했다. 모든 드라마에 필수적인 아주 극적인 상황이 없었다는 뜻이다. 오해하진 말자. 나는 나의 지루한 인생을 굉장히 사랑하고 있으며 그런 인생을 살기 위해 노력한 자신에 대한 뿌듯함도 느낀다.

나의 직업, 개발자에 관해서도 비슷한 감상이 있다. 오죽하면 미디어에서도 개발자는 주로 첨단기술을 이용해 주인공을 도와주는 조력자로 그린다. 혹은 괴상한 너드이거나.

그래서 ‘여성 개발자가 주인공인 소설이 있다’라는 출판사의 제안을 들었을 때는 호기심이 일 수밖에 없었다. ‘개발자가 주인공이라고? 개발자도 소수인데 그중에서도 더 소수인 여성 개발자가 주인공이라고?’ 개발자 이야기를 널리 알리는 데 당연히 한몫 거들어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다. 그렇게 호기심과 호기로움으로 번역 작업을 시작했다.

모든 번역 작업은(물론 내 번역 작업 이야기다) 항상 후회의 골짜기를 거쳐 간다. ‘내가 왜 이걸 번역한다고 했을까’ 개발자 리오나르다 라르손의 이야기는 유쾌하고 재밌고, 심지어 나에게는 직업적인 공감대까지 더해져 독자로서 즐거웠지만 동시에 역자로서 이 이야기를 온전하게 전달하는 게 몹시 힘들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공동 역자인 아내는 ‘지금껏 갈고 닦은 아재 개그 실력을 맘껏 뽐낼 시간이다!’라고 나를 다독였지만 작가가 농담을 던질 때마다 나는 머리를 쥐어짜 내야 했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번역, 개발자 용어, 아재 개그의 길고 긴 터널을 지나 드디어 리오의 이야기를 한국어로 선보이게 되었다. 역자로서 작은 소망 세 가지를 이야기하며 글을 마쳐본다.

다들 즐겁게 읽었으면(특히 아재 개그에 빵빵 터졌으면) 좋겠다. 리오처럼 자신을 드러내길 주저하는 여성 개발자들이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 책이 저자를 부자로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다.

덧붙임: 이 글은 고양이 볼트의 거센 방해 공작을 뚫고 작성되었다.

- 김태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