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X/UI의 10가지 심리학 법칙

내 스마트폰에는 은행 앱이 여러 개 설치되어 있다. 그중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은 단연 카카오뱅크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다른 앱보다 사용하기 편해서다. 가입부터 이체까지 공인인증서가 필요 없고 메시지 보내듯 손쉬운 계좌이체가 가능하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비슷하게 느끼는 까닭인지, 카카오뱅크는 2017년 7월 서비스를 오픈한 이래 1개월도 채 되지 않아 가입자 수 100만을 돌파하고 2020년 6월 기준 1,200만 명 이상의 가입자를 보유하는 등 독보적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많은 서비스가 나타나고 사라지고 비슷한 비즈니스 모델이 홍수처럼 쏟아지는 와중에도 성공하는 기업은 있고, 뛰어난 사용자 경험은 성공의 이유(혹은 경쟁력)가 되기도 한다. 카카오뱅크의 사례도 여기에 해당하는데, 카카오뱅크 모바일 서비스 기획을 총괄한 고정희 파트장은 모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이들의 이러한 성공의 배경에 ‘사용자에 대한 집중’이 있었다고 말한다. ‘같은 은행 서비스이지만, 다른 경험을 제공하겠다.’는 뜻으로 지었다는 카카오뱅크의 ‘같지만 다른 은행’이라는 모토에서도 이러한 생각은 잘 드러난다.
‘사용자 경험(User Experience)’이라는 용어는 1993년 애플 근무 당시 도널드 노먼이 만든 용어이다. 이후 그는 본서에 첫 번째로 소개된 제이콥의 법칙을 만든 제이컵 닐슨과 함께 닐슨 노먼 그룹을 설립한다. 도널드 노먼은 전기공학을 전공한 공학도인 동시에 심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저명한 인지심리학자다. 사용자 경험 디자인은 처음부터 사용자, 즉 인간에 주목했고 지금까지 수많은 분과를 형성하며 성장해온 내내 심리학과 함께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하지만 사용자 경험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이제 누구나 잘 안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다. 오히려 확실한 근거 없이 두루뭉술하게 사용자 경험을 개선해야 한다는 이야기만 늘어놓는 것은 이제 진부한 이야기에 불과하다. 이 책은 바로 그 문제에서 출발한다. 이 책의 저자도 한때 자칫 그런 일을 할 뻔한 처지에 놓였었다고 한다. 맡은 프로젝트에 관한 디자인 결정을 정당화할 정량적, 정성적 데이터가 미처 마련되기 전 이해관계자들에게 결정의 근거를 제시해야 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웹 사이트의 반응 속도는 빠를수록 사용성이 좋다는 건 누구나 알 수 있다. 하지만 ‘얼마나 빨라야 하는가? 느린 것은 어느 정도까지 허용되는가?’라는 질문에 별다른 근거 없이 임의의 값을 제시한다면 반대 의견에 부딪힐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를 구해준 답이 심리학이었다. 그는 심리학 논문을 실증적 증거로 활용한 덕에 이해관계자 설득을 한층 수월하게 마쳤다고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디자이너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주는 심리학 자료가 크게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신이 그러한 자료를 직접 만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이 책의 원류인 저자의 웹사이트 ‘Laws of UX(https://lawsofux.com)’가 탄생했다. 그리고 그렇게 갈무리해온 많은 심리학 법칙 중 특히 더 유용하고 널리 적용될 만한 법칙 10가지를 선별해서 담은 것이 이 책이다. 앞서 예로 든 사례에는 10장의 ‘도허티 임계’가 해답을 제시할 것이다.
1장부터 10장까지는 장마다 하나의 심리학 법칙을 정의와 기원, 그리고 풍부한 사례를 중심으로 소개한다. 그 사이에 필연적으로 등장하는 심리학 개념이나 디자인 기법 중 조금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항목은 별도의 공간을 내어 친절하게 추가 설명도 곁들였다. 각 장의 서두에는 해당 장에서 다룬 심리학 법칙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포스터가 실려 있다. 이 책에 실린 10개의 포스터를 포함해 저자가 정리한 총 20개 심리학 법칙의 포스터도 Laws of UX 웹사이트에서 무료로 내려받을 수 있다. 이 책에서 배운 심리학 법칙을 상기하고 체화하는 데 도움되길 바라며 저자가 직접 디자인한, 세심한 배려가 담긴 선물이다.
저자가 서문에서 밝혔듯 입문서로 기획된 책이고 전체적으로 실용적인 태도와 간명한 어조를 유지하고 있어서 책의 제목에 호기심을 느끼고 집어 들었다면 UX 디자인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사람이라 해도 누구에게나 상식의 저변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법칙을 소개한 이후 2개의 장에 걸쳐 이러한 법칙을 악용하지 않고 책임감 있게 활용할 방법, 그리고 이론적 지식에 그치지 않고 체화하여 실무에 즉시 적용할 방법까지 체계적으로 안내하고 있으므로 이 책의 혜택을 누구보다 가장 크게 누릴 독자는 UX 디자이너들이다.
아는 것과 이해하는 것은 다르다. 여러 사용자 경험 패턴을 단순히 지식으로서 습득하고 적용할 때보다 기저에 있는 심리학 법칙까지 이해하고 사용한다면 훨씬 더 설득력 있는 인터페이스로 이어질 것이다. 저자의 노력에 힘입어 인간이 지닌 ‘청사진’을 한층 잘 이해하게 된 독자들을 통해 더 많은 인간 중심의 디자인이 탄생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