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티 디바이스 UX 디자인

집에 PC가 1대밖에 없던 어린 시절의 이야기다. 잠자리에 누우면 천장이 테트리스 판으로 보일 정도로 테트리스가 꼭 하고 싶었는데도 오빠에게 차례를 빼앗기는 날도 있었다. 그럴 때면 분한 마음을 삭이며 억지로 잠을 청해야만 했다. 당시 누군가 길에서 나를 붙들고 이런 말을 한다고 상상해보자. “20년 후 당신은 손바닥만 한 컴퓨터를 항상 휴대하게 됩니다. 그 물건으로 전 세계 어디에 있든 가족들의 얼굴을 보며 통화할 수 있죠. 그 컴퓨터의 이름은 ‘똑똑한 전화기’입니다. 게다가 공책만 한 크기의 컴퓨터, 서류 봉투 안에 휴대해도 좋을 만한 컴퓨터도 생기고 심지어 이 모든 기기를 그 누구에게도 빼앗길 염려 없이 오로지 당신 혼자서 쓸 수 있을 겁니다.” 정말 그런 말을 들었다면 나는, 믿었을까?
믿고 아니고를 떠나서 실제 그런 세상은 왔다. 적잖은 사람들이 실제 그러한 세상이 온 사실에 놀라고 있을 무렵 저자는 한 사람이 여러 기기를 소유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러한 기기들이 생태계를 구성해 나가리라는 아이디어를 품기 시작했다고 한다. 일관성(Consistency), 연속성(Continuity), 상호보완성(Complementarity)으로 구성되는 3C 프레임워크를 통합적으로 활용하면 이 새로운 생태계를 이해하고 사용자가 경험하는 제품 생태계 전체를 고려해서 제품을 디자인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이다.
이 책은 이를 단순히 이론적인 수준에서 논하지 않는다. 멀티 디바이스가 이룬 생태계와 3C 프레임워크를 독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구글 검색, 애플 에어플레이, 아마존 킨들을 비롯해 본인이 직접 사용했거나 디자인한 서른 개 이상의 제품 디자인을 속속들이 분석하고 비교한 내용으로 꽉 차있다. 그뿐 아니다. 여러분이 만든 제품에 사용자가 로그인하게 하는 전략, 멀티 디바이스 생태계 개념을 사용자에게 교육할 전략, 데이터 분석 방법 등 디자인 과정에서 실질적인 도움이 될만한 팁을 알려주는 한편, 반응형 웹 디자인, 자아 정량화 운동 등 멀티 디바이스 시대를 맞아 알아두면 좋을 개념도 함께 설명하고 있다. 특히 최근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사물인터넷에 대해서는 1개 장을 들여서 다루었고 마지막에는 멀티 디바이스 생태계 구축 및 활용과 관련된 주요 문제의 해결책까지 소개하고 있다.
이 한 권에 저자 자신이 실리콘밸리라는 교실에서 UX 디자이너로서, 사용자로서 경험한 멀티 디바이스 세계를 망라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관점은 독창적이고 방식은 체계적이다. 디바이스 디자인 및 개발 분야 종사자는 물론이고 TV를 보면서도 스마트폰을 내려놓지 못하는 본인의 모습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난감한 기분이 드는 일반 독자까지, 다양한 사람들에게 유익한 내용이 담겨 있다. 저자의 노고가 이 책을 읽는 이들에게 온전히 잘 전달되어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책 작업을 할 때마다 ‘혼자의 힘으로는 할 수 없었을 겁니다’라는 시상식의 상투적인 표현이 괜히 생겨난 것이 아님을 체감하게 된다. 우선 훌륭한 책과 저자를 소개해주었을 뿐 아니라 직접 감수까지 맡아서 함께 꼼꼼히 작업해주신 배성환 님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또 번역을 맡을 기회를 준 한빛미디어와 작업을 하는 내내 살뜰히 챙겨주신 이복연 과장님께도 감사한 마음이 크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부족한 나를 늘 사랑으로 채워주시는 양가의 가족과 곁에서 가장 좋은 친구이자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신랑 태곤 씨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