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의 과학, 디자인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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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의 과학, 디자인의 힘

많은 현대인들이 그렇듯이 나도 의자병(Sitting Disease)을 앓고 있다. 의자병이란 허리 디스크, 목 디스크, 거북목 증후군, 혈액순환 장애 등 장시간 앉아 있는 습관이 유발하는 다양한 질환을 일컫는다. 평소보다 조금 더 집중해서 일한 날이면 저녁에는 으레 몸 여기저기가 불편해서 체형 가꾸기 같은 호사스러운 목적이 아니라 오로지 ‘살기 위해’ 운동해 온 지 벌써 여러 해가 지났다. 이런 신조어가 생기고 ‘오래 앉아 있는 습관은 흡연만큼이나 해롭다(Sitting is the new smoking)’이라는 경구가 널리 알려진 것은 그 위험성을 누구나 알고 있지만 바로잡기 쉽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나 역시 여러 해에 걸쳐 새해 계획 중 하나로 컴퓨터 앞에 오래 앉아 있는 이 해로운 습관을 고치겠다고 다짐했지만 의지대로 되지 않았다. 눈앞의 일에 골몰하다 보면 이런 다짐은 쉽게 잊혔다.

그러던 중 애플워치를 착용한 이후부터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애플워치는 내가 1시간 이상 앉아 있으면 알림을 보내 주었고 작업에 몰두하다가도 억지로라도 일어나 스트레칭을 할 수 있게 했다. 이 단순한 알림 덕분에 일어나기 하루 목표를 쉽게 채울 수 있었고, 덕분에 고질적인 통증도 크게 줄었다. 그런데 나약한 의지를 딛고 내 행동을 변화시킨 이런 힘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이 책을 만나기 전까지는 그 답을 알기는커녕 궁금해한 적도 없었다. 하지만 이 책 『보이지 않는 UX』는 바로 이런 질문에 해답을 제시했다.

행동의 변화가 단순히 결심과 의지로 이루어진다면 세상에 목표를 이루지 못할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반복적인 목표 달성 실패의 경험이나 실천하지 못한 계획을 돌이켜보면 사람은 의외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 『보이지 않는 UX』는 바로 이런 행동의 메커니즘을 파헤쳐서 행동 변화를 이끌어내는 제품 디자인에 관여하는 사람들, 즉 ‘좋은 제품’을 만들어도 왜 사용자가 꾸준히 사용하지 못하는지 궁금해하는 실무자들에게 실질적인 지침을 제공한다. 동시에 이 책은 현대를 살아가는 모두에게도 유용하다. 오늘날 우리는 우리의 행동을 이끌거나 변화시키려는 수많은 제품에 둘러싸여 산다. 본서가 소개하는 행동과학 기반의 다양한 디자인 전략을 이해하면 누구나 자신에게 꼭 필요한 개입은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불필요한 개입은 효과적으로 거리를 두는 안목을 기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이 특히 훌륭하다고 느낀 이유는 초판에서 소개한 방법론을 저자가 실무에서 꾸준히 활용하고 발전시켜 이번 개정판에서는 더욱 발전된 버전으로 업데이트하여 소개한다는 점이다. 초판에서 제시한 방법론을 실험적으로 도입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다양한 연구와 실무 경험을 반영하여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개선을 이루어냈기에 가능한 결과일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개정판은 단순한 재출간을 넘어 실질적 진보를 담고 있어 그 가치가 더욱 깊다.

또한, 이 책의 또 하나 눈에 띄는 장점은 디자인 원칙과 방법론에 대해 구체적인 연구를 근거로 제시한다는 점이다. 단순한 이론적 주장에 그치지 않고, 저자는 이를 뒷받침하는 연구 데이터를 꼼꼼히 제시하여 독자가 구체적인 근거를 직접 확인할 수 있게 했다. 이로 인해 독자는 행동 변화를 위한 디자인에 필요한 근거를 직접 확인하며 더욱 확신을 가지고 실무에 적용할 수 있다.

게다가 이 책은 행동과학을 활용한 디자인 방법론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기초가 되는 인간 마음의 작동 방식을 다각도로 다루고 있어 더욱 흥미롭다. 덕분에 행동 변화 설계를 직접 다루지 않는 일반 독자도 사람의 행동과 의사결정 과정을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다. 번역자인 나 역시 실무자가 아닌 일반 독자의 입장에서 이 책을 읽으며 인간의 행동과 마음에 대한 통찰 덕분에 끝까지 흥미롭게 빠져들 수 있었다.

번역을 하다보면 어느 책에서나 마음에 남는 구절들을 만난다. 이 책에서는 ‘변화를 일으킨다는 것은 행동에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다’라는 한 문장이 유독 마음에 남았다. 단순한 문장이지만 여러 해 동안 행동 변화를 고민해온 저자의 통찰이 담긴 한 줄이기에 이렇게 기억에 남았으리라고 생각한다. 행동 변화를 위한 디자인을 다루는 책인 만큼 독자 여러분도 이 책의 통찰을 마음에 새기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행동으로 옮겨 행동 변화를 이끌어낼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 나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