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솔워즈

2016년 여름 닌텐도는 미국, 유럽, 일본 등지에서 포켓몬 고를 출시하면서 전 세계에 돌풍을 일으켰다. 그 인기란 지도 국외 반출 등의 문제로 게임을 출시하지 못한 우리나라에서조차 지상파를 비롯한 온갖 언론사에 관련 소식이 매일 오르내렸을 뿐 아니라 우연히 서비스 가능 지역으로 분류된 속초시로 향하는 버스표가 연일 매진이 되게 할 정도로 대단했다.
이제 약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2016년의 포켓몬 고처럼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게임을 떠올려 보자. 1970~80년대 태어난 사람이라면 경쾌한 배경음악과 효과음만 들어도 가슴이 두근두근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는 게임이 하나 있을 것이다. 바로 닌텐도의 슈퍼 마리오다. 하굣길에 패미컴이 있는 친구네 집에 삼삼오오 모여서 멜빵바지를 입은 배관공을 조종해서 공주를 구하러 다닌 기억이 누구에게나 있지 않은가?
이 책은 바로 그 닌텐도를 비롯한 당시 게임 회사들에 대한 이야기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가정용 콘솔 게임을 만들던 회사들 말이다. 좁게는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중반까지 한창 성장하던 거대한 미국 시장에서 세가와 닌텐도가 진검승부를 벌인 이야기부터, 넓게는 1880년대 닌텐도의 탄생, 비디오게임 등장 초기에 겪은 흥망성쇠에 이르기까지 당시 관계자들을 인터뷰하여 고증한 사실을 바탕으로 풍요로운 지식을 전달하는 게 이 책의 일차적 미덕이다.
하지만 이 책에는 조금 특별한 이차적 미덕이 여러 겹으로 존재한다. 우선 이 책의 저자는 게임 시장이라는 무림을 평정했던 절대 강자인 닌텐도가 아니라 이들에게 무모할 정도로 당차게 도전장을 내밀었던 세가의 대표, 톰 칼린스키라는 조금은 생소한 인물을 주연으로 내세웠다. 이러한 결정은 현명했다. 당시 세가는 이른바 사교(邪敎)에 가까웠다. 닌텐도라는 맹주가 절대 가지 않을 길을 기꺼이 가며 그들을 위협했다. 만약 ‘강자가 이렇게 계속 강자로 잘 살아남았습니다’라는 기조로 이야기가 진행되었다면 지나치게 미화될 우려가 클 뿐 아니라 반전이나 역전의 순간을 기다리는 즐거움 또한 빼앗기기 십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약자를 주인공으로 삼아 때로는 영리하게, 때로는 대담하게 고군분투하며 성장하는 모습을 역동적으로 보여주면서 재미라는 달콤한 매력을 발산한다. 필자 또한 작업을 위해 미리 정한 분량을 다 읽고도 ‘엇, 그래서 다음에는 어떻게 되는 거야?‘라는 궁금증에 드라마의 다음 편을 기다리는 심정으로 페이지를 더 넘겨보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게다가 이 책은 경영, 협상, 마케팅, 물류, 인적자원 관리에 관한 이들의 경험을 서사적으로 보여주며 주입식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웬만한 경영서보다 훨씬 더 많은 깨달음을 준다. 또 내부자가 아니었다면 알기 어려운, 다양한 결정의 막후를 엿보는 짜릿함까지 후하게 덤으로 제공한다.
다만 원서의 맛을 훼손하지 않고 최대한 그대로 전달하려고 노력했음에도 우리에게 생소한 용어, 개념, 문화적 배경이 등장할 때는 글을 읽는 호흡에 방해될 것을 감수하고라도 주석을 여럿 달 수밖에 없었던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보다 많은 사람이 이 책을 즐길 수 있도록 가능한 상세하게 주석을 추가하기는 했지만, 이해하는데 문제가 없다면 주석은 나중으로 미뤄두고 흥미롭게 진행되는 이야기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따라가기를 권하고 싶다. 정보만으로도 충분히 가치있는 책이지만 그보다는 한 편의 영화같은 스토리텔링에 빠져들 때 이 책의 진가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렇게 역자로서의 뿌듯함 뿐 아니라 독자로서 기쁨도 느끼게 한 책의 번역을 맡겨준 도서출판 길벗과 편안한 마음으로 번역에 집중할 수 있게 배려해주신 서형철 차장님, 남아 있는 거친 표현을 매끄럽게 다듬기 위해 함께 고민해주신 박정수 편집자님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그리고 무엇보다 언제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양가 네 분의 부모님과 작업이 어려워질 때마다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민하는 나를 다독여 사람 같이 살게 해주는 신랑 태곤 씨에게도 지면을 빌어 감사의 마음을 남겨본다.